고등학교 때 남자애를 좋아했던 이야기.txt

|2018.06.14 03:27|0|386
원문 : 166942041
지금은 남자를 좋아한다는건 상상도 못하지만



고등학생 시절 한창 혼란스러운 사춘기 때



마치 잠깐 찾아오는 수두처럼



아프고 애틋한 감정의 열병을 앓은 적이 있었다



그 애를 처음 만난 건 고등학교 입학 전 오리엔테이션 때였다

강당 안에 반별로 모여 앉아서 교장 선생님의 담화를 듣고 있었다

누군가는 벌써부터 친구 만들기에 열을 올리고 있고

누군가는 기선제압에 지지 않으려 조용히 신경전을 하고

누군가는 남고에 배정된 것에 불만을 토하는 등

그렇게 다양한 아이들이 모인 강당 안은 왁자지껄 시끄러웠다

남중을 졸업해 남고로 진학한 기구한 운명에 이제는 뭐라 할 기색도 없던 나는

그저 주위를 두리번 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한참이나 멀리 떨어져 있던 너와 눈이 마주친 것은 분명 우연이라고 밖에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남자아이들만으로 가득한 강당 안에 저 멀리 유난히 희고 예쁘게 생긴 아이가 앉아 있었다

눈 처럼 희고 가는 팔 다리로 무릎을 꿇어 안은 채

까맣고 커다란 눈이 나를 잠깐 봤다가 이내 앞을 향했다

그 당시엔 그저 호기심만으로 그 아이를 한참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입학식을 지나 어느덧 새로운 교복과 교정에 익숙해지려고 하던 그 때 쯤

복도에서 너와 재회했다

하얀 교복이 잘 어울리는 네 흰 피부와 까만 머리, 그리고 산딸기처럼 빨간 입술이

복도를 뛰어가다가 또 한 번, 나와 눈이 마주치고는 친구들에게로 되돌아갔다

너의 반은 내 옆에서 또 옆반이었다

그 사실을 알게된 날 부터 나는 매점에 가거나 책상에 엎드려 자는 대신

쉬는 시간을 복도에서 보내게 되었다

시키지도 않은 복도 청소를 하거나 몇 번이고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네 모습을 찾았다

그러다 우연찮게도 교실 안에 앉아 있는 너를 보게되면은

이상하게 심장이 두근거리고 그러다 울리는 수업종에 심장 소리가 묻히곤 했던 것이다


중간고사가 지난 후 부터였을까.



영어나 수학등의 중요과목을 수준별로 분반해서 실시하게 되었다

나는 옆 교실에 가게되었는데 교실에 들어서 보니

각기 다른 반에서 모인 애들이 어느새 무리를 지어 대화를 나누고 있거나

아는 얼굴을 찾는데 실패한 애들은 그저 멀뚱히 칠판만 바라보고 있었다

나도 그 중 한 명이라 홀로 자리에 멀뚱히 앉아 있는데

등 뒤에서 누군가가 콕콕 찔렀다

돌아보니 상대는 엎드린 채라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다만 하얗고 가는 팔이 '설마' 하는 감정과 함께 심장을 뛰게 했다

내가 말없이 앞을 보자 잠시 후 등 뒤가 또 콕콕

재빠르게 뒤돌아보니 이번에는 웃고 있는 너와 눈이 마주쳤다

안녕

어, 어.. 안녕

가까이서 본 네 얼굴은 멀리서 힐끔거릴 때보다 훨씬 예쁘장했고 처음 들은 네 목소리는 상상했던 것보다 미성이었다

웃는 얼굴만이 똑같이 반짝거렸다

나는 매일 매일 영어 수업이 오기만을 기다리게 되었다


너는 종종 손가락으로 내 등을 찌르거나 그 위에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며

'뭐게' 하고 물어오곤 했고, 설렘을 숨기려 '모르겠어' 하고 담담히 대답하는 나를 보며

너는 배시시 웃었다.


나는 더 자주 복도를 쓸고 닦았고, 그러다 너와 마주치면 나서서 인사를 건네지는 못한 채

곁눈질로 너를 쳐다봤다

우연히 화장실에서 마주치면 이상하게도 소변을 보지 못하고 거울만 보는 척을 했고

기분 탓인지 너도 그럴때면 황급히 화장실을 떠나곤 했다


영어시간, 가끔 프린트를 건네기 위해 뒤를 돌아서 너를 볼때면



너는 두 손에 턱을 받친 채 까맣고 커다란 눈으로 꿈뻑꿈뻑 나를 올려다 봤다

내가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그저 재밌는지 웃는 네가 미우면서도 예뻤다.


한 번은 복도 저 멀리에 네가 다른 친구들과 함께 있는 것을 보았다

나를 발견한 네가 장난스런 웃음을 지으며 옆의 친구에 팔짱을 끼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는 웃으며 나를 힐끔거리는데, 나는 애써 표정을 지운 채로 그 옆을 지나쳐 갔다

내가 모르는 친구의 팔에 매달려서는 내가 사랑하는거 알지? 등의 말을 장난스레 하는걸 들으며 나는 그저 걸어갔다

내가 어떤 반응이라도 해주기를 바라는 듯 너의 시선이 이따금씩 내게 향하는 것이 느껴졌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가고 잠시 후,

ㅇㅇ아! 하고 네가 내 이름을 불렀다

어느새 친구와 팔짱을 풀고는 두 손을 붕붕 흔들며 네가 인사하고 있었다

웃으려 했으나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말없이 교실로 돌아왔다.


다음 영어 수업 시간에 너는 내게 유난히 장난을 많이 걸어왔다

등을 콕콕 찌르고 간지럽히며 뒷 머리를 쓸어주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이전보다는 조금 덜 대꾸를 해주었다

교실을 나가려는데 네가 다가와 아주 잠깐, 내 손을 잡았다 놓았다.

네 손은 차가웠고, 꺼칠하고 투박한 내 손과 달리 작고 부드러웠다.


내 건강에 이상이 생긴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나는 학교를 가는 중에 버스에서 쓰러졌고

그 이후로 딱 한 번 부모님과 함께 휴학계를 내러 학교에 들렀을 때를 제외하면

두 번 다시 학교에 돌아가지 못하게 되었다


스마트폰도 없던 시대였다. 나는 네 연락처를 알지 못했고, 네 마음도 알지 못했기에 연락을 취할 수단도 핑계도 생각나지 않았다

나는 꼬박 1년을 치료로 시간을 보냈다.

다시 학교로 돌아갈 수 있을 정도로 호전된 것은 휴학을 하고 2년이 지난 후였다

복학을 하게 되면 다른 아이들과 비교해 나이는 많지만 같은 학년에 다녀야 한다는 사실이 싫었던 나는

나를 아는 사람이 없는 먼 곳의 고등학교에 입학해 나머지 2년을 보냈고, 그렇게 무사히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성인이 되고 언젠가 낡은 옷들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옛 교복을 발견했다.

거의 7년만에 꺼내 보는 것이었다. 1년 밖에 입지 못해서 그런지 아직도 새것같고 종이냄새 같은 것이 났다.

다시는 입게 될 일이 없을 옷이었다

그러니 등쪽을 보다가 네가 남긴 흔적을 발견한 것은 우연이라고 밖에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오른쪽 어깨 조금 아래에 연필로 작게 그려진 하트와 스마일 그림.

오래전 그 영어 시간에 내 뒤에서 등을 간지럽히던 네 손길이 그곳에 머물러 있었다

7년이 지나서야 발견해준 내가 밉지도 않은지 웃고 있는 작은 그림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나는 오랜만에 울었다.



그리고 얼마 후 페이스북에서 너를 찾았다.

네 이름 세 글자를 발견한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 앉았고, 한참이나 클릭을 망설였다.

그러다가 이윽고 뭔가에 홀린듯 네 페이스북에 들어가서

몇 년만에 너의 사진을 봤다.

어떤 경진대회에서 수상을 했을 때의 익숙한 너의 모습과

고등학교 졸업식에 꽃을 든 채 부모님과 웃고 있는 너의 모습과

군복을 입은 채 빡빡 민 머리가 어색한지 부끄럽게 웃고 있는 너의 모습과

여자친구와 다정하게 손을 잡은 채 웃고 있는 너의 모습을 보았다

내가 없는 시간 속에서 네가 보낸 시간들이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거기엔 더 이상 내가 알던 너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교복을 입고 백합처럼 하얗게 웃던 너는 어느새 늠름하게 웃을 수 있는 어른이 되어 있었다

이상하게도 마음은 아프지 않고 웃음이 나왔다

그저 그 때처럼 밝게 웃는 네 사진을 보며 나직하게 안녕.

그 때 네게 돌려주지 못한 대답을 했다.


안녕, 내가 사랑했던 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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